한 가지 회만을 먹다보면 쉽게 질릴 수 있다. 밍밍한 회를 먹다보면 특히 그렇다.
광어나 우럭만 놓고 먹다면 기름진 음식이 당기기도 하고, 밍밍한 맛을 이길 수가 없어 쉽게 매운탕을 시키곤 한다.
수산시장에서 활어를 사다보면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생선은 대체로 큰 녀석들이 맛있는 편인데, 특히 광어라면 아무리 작아도 2킬로그람 이상은 되어야 먹을만한 횟조각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광어와 우럭만 몇 마리 담아 2~3만원에 판매하는 수산시장도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녀석을 먹다가는 입맛만 버리고 매운탕이나 기대하게 될 것이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맛이 있는 큰 생선을 잡아 여러 고객에게 나눠주는 일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요새에는 활어회 대신에 선어회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펄떡펄떡 뛰는 생선을 바로 앞에서 잡아 썰어주는 걸 더 선호한다. 자연스럽게 판매자는 고객들에게 작은 생선들을 잡아주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요새 수산시장에 가면 좋은 조합의 회를 판매하는 생선집이 많다. 고객들 입장에서는 다양한 생선을 맛 볼 수 있다보니 이런 회를 사는 편이 더욱 만족도를 높이곤 한다. 하지만 이런 생선집은 고객들이 많기 때문에 가능하다. 생선을 나눠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커다랗고 맛있는 생선을 잡게 되고 자연스럽게 회의 구성도 좋아진다.
수산시장의 생선집이 손님을 끌어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다가 좋은 블로거들을 만나서 인터넷 홍보가 되는 덕택에 엄청난 수의 고객을 끌어들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운이 좋은 경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요 몇 년 사이에 방어 횟집 순위 표를 자주 본다.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자기가 대방어를 먹어보고 순위를 매겼단다.
내가 좋아하는 가게가 1위에 랭크되어 있어서, 그럭저럭 괜찮은 순위표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표를 보다보니 이상한 횟집 연합의 이름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아... 이 이름 어디서 봤지? 하던 차에 한 가게를 기억해냈다.
가락시장이 신시장으로 이전하기 전에, 회를 구하러 간 적이 있었다.
3명이 먹을 광어를 구할 요량으로, 2.5킬로쯤 하는 광어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선집이 작은 광어만 갖다놓고 뜨내기 손님을 찾고 있었다. 좋은 큰 광어를 사기는 쉽지 않았다. 대부분 말라서 뼈가 앙상한 큰 광어를 10만원에 파는 집만 볼 수 있었다.
어떤 생선집에서 두툼한 광어를 발견하고 가격을 물어보려 하는데, 옆 생선집에서 인터넷을 보고 찾아왔냐며 옆집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무슨 이야긴지 영문을 몰라 당황하던 차에 그 사장님이 횟집 연합의 간판을 보여주셨다. 나는 모르겠다며 내가 살 광어를 파는 가게와 흥정했다.
나는 눈에 찼던 두툼한 광어를 6만원에 구입해 친구와 감탄하며 먹었다.
그 횟집 연합은 기억해 잊혀졌었다.
그런데, 방어 횟집 순위를 보니 마음이 또 동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회가 썩 좋게 나오는 듯 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방어를 먹자며 순위표에 있는 횟집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마침 2위에 랭크된 집이 이동하기 편하길래 가기로 했다. 그 횟집 연합에 속해 있는 생선집이었다.
1위의 맛을 익히 알고 있으니 2위는 얼마나 맛이 있을까 기대를 많이 했다.
생선집을 찾아가 2명 분의 방어 10만원 어치 회를 주문했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네... 10만원 어치.
붉은 혈합육이 많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역시나였다.
방어는 특유의 비린내가 심한데, 작은 방어일 수록 특히 그렇다.
그 비린내는 혈합육에서 많이 나는데, 대방어에는 혈합육이 아닌 부위도 많기 때문에 비교적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결국에 위 사진의 흰살 부위만 먹고 혈합육은 먹다가 역해서 놓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10만원어치라고 치기엔느 뱃살 부위도 별로 없고... 뱃살도 작다.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앞에서 커다란 방어를 잡았는데, 내가 원하는 맛의 대방어 크기 정도는 아니었을까?
금요일 저녁이었는데, 혹시 손님들이 너무 적게 와서 별로 안 좋은 생선이었던 걸까?
아니면 피 빼는 기술이 부족해서 맛이 없는 것은 아닐까?
순위표에서 2위씩이나 하는 집인데?
아니면?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사진들을 보다가 어떤 지점에서 이해가 되는 순간이 왔다. 혹시 방어의 맛있는 부위는 다른 사람의 식탁에 올라간 것은 아닐까?
그러고보니 단골손님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올린 회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아하....
내가 뜨내기 손님이라 1인분 5만원짜리를 이렇게 먹은 거였나? 싶었다..
인터넷에 도는 대방어 순위표라는 것에서 1위로 랭크되는 대방어집은 5만원에도 이것보다 구성이 좋다.
이런 악연이 생긴 이후에, 그 횟집 연합의 이름은 더욱 자주 보게 되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트위터에서 여기저기에서 칭송 받는다.
심지어 어느집 집들이에 갔는데, 모듬회가 나와 있었다. 회 구성을 보고 내가 횟집 연합이냐며 묻자 정확하게 맞았다.
10만 몇 천원짜리 회라는데 다들 칭찬이 자자했다. 나는 잠자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숭어, 농어, 연어, 도미, 광어 조합이다. 양도 많고 참 좋은 구성이긴 하다.
회의 두께를 보아 큰 생선을 잡은 듯 했다.
그런데, 큰 생선을 잡으면 마땅히 나와야 할 가장 맛있는 뱃살 부위와 광어 지느러미같은 부위는 없었다.
10만원짜리 회에, 횟살이 이렇게 많이 나왔는데, 정작 맛있는 부위는 없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인터넷에서 칭찬이 자자한 사진들을 보니까, 명확해졌다.
단골에게는 좋은 부위를 준다. 심지어 가격도 싼데 고급부위가 많다.
일반 손님이 지불해서 사가는 생선의 좋은 부위는 그 단골들이 모두 가져가는 것 같았다.
클레임을 걸었더니 회를 엄청나게 주더라라는 글도 보았다.
그 가게들에게 좋은 회를 받기 위해서라면 단골이 되는 수밖에 없겠구나. 아니면 진상이 되거나.
최근에 대방어집을 찾다보니, 새롭게 리뉴얼된 대방어횟집 순위를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가게의 순위가 떨어지고 그 횟집 연합의 횟집이 1위로 랭크되었더라.
사진에 올라온 회접시는 별로인 것 같은데 칭찬이 대단하다.
속으로만 뾰로통해지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