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평양냉면을 먹으러 서령을 방문했다. 이곳은 숭례문 바로 옆에 위치한 한식 레스토랑으로, 신선로, 불고기, 냉면, 수육 등 정통 한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여름 점심시간에는 대기 인원이 많아 쉽사리 방문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엔 겨울 평일 오후를 노려 대기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자리에 앉자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메밀차가 나왔는데, 전통 평양냉면집들이 보통 면수를 제공하는 것과는 차별화된 느낌이었다. 메밀차의 고소한 향이 미각을 부드럽게 열어주며 기대감을 높였다.
주문한 메뉴는 순면 물냉면과 들기름 순면. 가격은 한 그릇에 약 16,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오랜만에 즐기는 '서울식 평양냉면'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리고 그 기대는 완벽하게 충족되었다.
순면 물냉면은 깔끔한 비주얼과 함께 나왔다. 얇게 썬 오이, 노란 지단, 반숙 달걀이 정갈하게 올려져 있었다. 바닥에 누름고기(편육)가 깔려 있었는데, 육수를 낸 후 영혼이 빠진... 수육을 고명으로 올려주는 타 냉면집보다 이게 낫다 싶었다. 편육은 원래 차갑게 먹는 음식이기도 하고. 면발에서는 메밀향이 확 풍겼고, 육수는 진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살짝 염도가 있는 육수는 면발의 심심한 맛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평소 평양냉면을 즐기면서도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맛을 적절히 보완한 느낌이었다.
냉면에 절인 무가 따로 올라가 있진 않았지만, 곁들여 나온 절인 무가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더해주었다. 처음엔 이 단맛이 냉면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절인 무의 달콤함이 심플한 냉면의 맛에 작은 변주를 더해주는 '킥' 역할을 해주었다.
들기름 순면은 그야말로 '신선함'의 정수였다. 갓 짜낸 듯한 신선한 들기름 향이 면발과 어우러지며 입안 가득 퍼졌다. 거친 식감이 느껴지는 메밀 면발과 들기름의 고소함은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평양냉면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고, 간단하면서도 깊이 있는 맛이 돋보였다.
물냉면은 단연코 이날 식사의 하이라이트였다. 2024년 통틀어 가장 맛있게 먹은 식사로 기억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의정부면옥, 우래옥, 필동면옥, 을지면옥 등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냉면집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서령은, 최근 들어 새롭게 떠오르는 평양냉면 명가로 손색이 없었다.
특히 전통적인 레거시 면옥들과 신진 평양냉면집들 사이에서 서령은 깔끔한 서울식 냉면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했다. 단순히 이름뿐만 아니라, 냉면의 맛과 구성, 그리고 메밀과 들기름의 조화로움에서 정성과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서령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외식 이상의 경험이었다. 평양냉면의 본질을 잘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이곳은, 냉면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꼭 한번 경험해볼 만한 곳이다. 특히 겨울철 대기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잘 활용해보길 추천한다. 깔끔한 맛의 냉면과 신선한 들기름 순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받쳐주는 정갈한 서비스까지. 숭례문 옆, 서령에서의 한 끼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영업시간 매일 11:00 ~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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