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역사라고 하면 귀족이나 왕 같은 상류층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은 기록으로 남아 있고, 주목받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뿌리를 찾으려면, 민중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사 탐구가 아닐까?
이 책은 조선 시대를 살아갔던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직업을 다룬다. 삯바늘질로 생계를 유지했던 가난한 여성, 사형을 집행하는 회자수, 시체를 다뤄야 했던 오작인, 계급을 극복하지 못했던 기생과 노비들, 그리고 각종 기술장인 등.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직업에 대한 나열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했던 필수적인 역할에 대한 증언이다.
삯바늘질은 단순히 옷을 꿰매는 일이 아니라, 생존의 도구였다. 바느질을 통해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가정을 지탱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특히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는 박제가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삯바늘질을 했다는 대목이...) 또한, 삯바늘질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섬세함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었다.
사형을 집행하는 회자수의 이야기는 무거운 책임감과 감정적인 고통을 떠올리게 한다. 생명을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 했던 그들은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이 받는 대우는 천대와 멸시뿐이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가 사회에서 '필수적인 일'로 여기는 일이 왜 항상 존경받지 못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시체를 다루는 오작인의 이야기는 사회적 금기와 직결된 노동이 어떻게 사회적 천대를 받는지 보여준다. 검시는 세균이나 독에 노출될 수 있어 대단히 위험하지만, 오작인들은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다.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였다.
분뇨를 처리하는 업자들은 현대의 위생 관념으로 보면 단순한 청소부가 아니라, 조선 후기 사회를 위생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존재였다. 분뇨는 단순히 제거해야 할 폐기물이 아니라, 농업의 중요한 자원이기도 했다. 분뇨를 팔아 또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분뇨 처리 업자들은 사회적 멸시와 천대를 받아야 했다.
기생의 삶은 조선 시대의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들은 단순히 남성의 유흥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시와 노래, 춤으로 조선의 문화를 꽃피운 예술가였다. 특히 정조 대에 등장했던 유명한 기생들은 단순히 미적 가치뿐 아니라 정치적 대화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생들은 여전히 사회적 편견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노비의 이야기는 조선 사회 구조의 불평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모든 노동을 강요당하면서도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특히 노비들은 농사일, 가사 노동, 심지어 주인의 개인적 욕구를 채우는 일까지 모든 것을 담당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고통의 기록이 아니다. 노비들 중에는 주인의 가혹한 대우에 맞서 싸운 이들도 있었고, 사회적 불평등에 저항하며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한 이들도 있었다.
백성들에게 소장을 대신 작성해주는 외지부는 조선 시대의 문맹 사회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거나 쓰지 못했기 때문에 외지부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소송을 준비하거나 중요한 문서를 작성해야 할 때 외지부의 도움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이 직업 역시 제대로 된 존중을 받지 못했다.
이 외에도 조선잡사는 우리에게 수많은 직업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염모는 단순히 옷감을 염색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색채를 제공하는 예술가였다. 염모가 제작한 자주색 비단이나 붉은 옷감은 권력과 부의 상징이 되었지만, 정작 염모 자신들은 가난과 고단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한 필의 비단을 염색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그들이 받은 대가가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잠녀로 대표되는 여성 해양 노동자들의 삶은 바다의 위험과 싸워야 했던 고단함 그 자체였다. 잠녀들은 미역이나 해초를 채취하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이 과정에서 겪는 육체적 고통과 자연의 위협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들은 어촌 경제를 떠받치던 존재였으나, 그들의 노력은 종종 기록되지 않았거나 무시되기 일쑤였다.
이 책은 단순히 노동의 역사를 다룬 책이 아니다. 조선잡사는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 즉 사회를 지탱하던 민중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조명한다. 노동은 단순히 경제적 대가를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이며, 그들의 노력 없이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조선 시대는 물론이고 현대에도 여전히 노동을 천대하거나 당연시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의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조선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결국, 조선잡사는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책이다. 우리는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야 하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실현해야 한다. 노동은 인간의 존엄과 직결된 문제다. 과거의 민중들이 그러했듯, 오늘날의 노동자들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조선잡사가 던진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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