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독서

요망하고 고얀 것들

기도하 2025. 1. 24. 21:04

 

《요망하고 고얀 것들》은 조선 시대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요괴들의 다양한 모습과 역할을 소개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고전소설에서 요괴는 흔히 악의 화신으로 등장하며, 권선징악의 구조 속에서 벌을 받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대개 당대의 윤리적 기준에서 가장 비윤리적인 행동을 자행하는 존재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설정은 당시 사회가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를 반영한다. 나는 이 점에서 요괴를 단순한 악역으로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전우치전》의 여우는 성욕에 사로잡혀 인간을 유혹하고 정기를 빼앗는 존재로 그려진다. 또 《옥란기연》의 구미호는 인간으로 둔갑하여 가정을 파괴하고 가족 구성원들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이런 요괴들은 단순히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라, 효도, 절제, 성실함과 같은 당시의 도덕적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상징한다. 요컨대 요괴는 인간 사회의 윤리적 경계를 시험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요괴들이 단순히 악역이라기보다, 당대 사회가 가진 두려움과 금기의 집합체로 보인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선악의 기준이 현대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고전소설 속에서 선한 주인공들의 행동조차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윤리적이지 않을 때가 있다. 가령,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남성이 곧바로 재혼한다든지, 국왕을 위해 주인공이나 여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일이 허용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우리가 현재의 도덕적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요괴라는 존재가 단순히 '악'으로 규정되지만, 그들이 상징하는 금기와 욕망이 인간의 본성을 대변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이중적인 면모가 요괴라는 존재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만약 현대 사회에서 요괴가 등장한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가 지금 가장 비윤리적이라고 여기는 행동은 무엇일까? 고전소설의 요괴가 당시 사회의 윤리적 기준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면, 현대의 요괴는 아마도 환경 파괴, 소셜 미디어를 통한 허위 정보 유포, 부의 불평등 심화, 그리고 인간 소외와 같은 문제를 상징하지 않을까? 나는 현대의 요괴가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망하고 고얀 것들》은 단순히 과거의 요괴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당시의 가치와 현대의 가치를 비교하게 만들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윤리적 고민의 계기를 제공한다. 요괴라는 상징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욕망과 두려움을 직시하게 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현대 사회의 '요괴'를 마주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그들과 맞서야 할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할 열쇠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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