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송사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정려원 씨가 했던 말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네, 사실 저희 마녀의 법정이라는 드라마가 성범죄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는데요. 사실 감기처럼 이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 있지만 그 가해자들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저희는 이 드라마를 통해서 성범죄 성폭력에 대한 법이 더 강화돼서 가해자들이 처벌을 제대로 받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더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범죄 피해자 분들 중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기 때문인데요. 저희 드라마로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도움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 수치심을 견뎌야 하는 것 이외에도 각종 법률과 싸워야 한다. 특히 명예훼손과 피의사실공표죄에서 벗어나기 힘든데,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나 뒷벼경이 좋을 수록 2차 3차 가해를 당하기가 일쑤다. 가해자의 변호사는 맞고소로 대응하게 되고 성폭력 피해자들은 더욱 힘든 싸움을 하게 된다. 증거라도 불충분해 무죄 판결이 나오면 무고죄가 가능하기 때문에 협박까지 당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어떻게 피해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피해자를 돈을 뜯으려 접근한 '꽃뱀'이라며 오히려 비난을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 <2013년 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성희롱부터 강간까지 성폭력을 겪은 사람들 중 경찰에 도움을 청한 비율이 1.1%밖에 안된다. 그중 강간 및 강간미수의 신고율이 6.6%에 불과하다. 한 해의 성폭력 범죄 발생 건수는 얼마나 될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4년도 자료에 따르면 2만7천 건이다.(이유있는 언니들의 분노... 통계로 짚어봤습니다.) '꽃뱀'이란 게 실재한다고 쳐도 신고된 성폭행 건 수중에 진짜 '꽃뱀' 사건이 몇 건이나 되겠는가?
허위 강간 신고율에 관한 한국의 통계는 집계되지 않았다. 만약 세계적으로 비슷한 추세라면, 미 연방수사국은 허위 강간 신고율을 2~4%로 파악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한 칼럼에 재미있는 말이 적혀 있다. 성 범죄 생존자에게 '꽃뱀' 운운하는 것은 교통사고 당한 사람에게 '보험사기' 이야기를 꺼내거나, 응급실 환자에게 '꾀병 아니냐'고 묻는 것보다 몰상식한 짓 아니냐라는 것이다.('꽃뱀론'으로 성폭력을 지지하는 당신에게)
정말 나와 가까운, 아는 분께서 남편의 친구에게 심한 성추행을 당했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남편이 '그럴리 없다'며 도리어 친구 편을 들더라는 것이다.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심한 수치심을 느꼈던 그 분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은 '증거'를 찾아오라고 했다. 아는 분께서 '자백'도 증거가 될 수 있냐고 묻자 그러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그 분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핸드폰 녹음 방법을 배우고, 성추행을 했던 남편의 친구에게 전화를 수차례 걸어 자백을 받아냈다.
홀로 외로운 싸움을 거셨던 그 분은 결국 법정싸움까지 걸 수 있게 되었고, 남편의 친구는 수 차례 집을 방문하여 사죄를 하며 고소취하를 얻어냈다. 수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고소취하로 일단락된다. 고소취하가 되면 공소권이 사라진다.
이처럼 유죄가 명백한 사건도 고소취하가 된다. 그런데 고소취하를 했다고 피해자를 '꽃뱀'으로 모는 경우는 흔하게 볼 수 있다. 내 지인의 남편 분을 보라. 피해자는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한다. 어떻게 피해자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단 말인가? 온갖 수치심을 떠안고 가까스로 입을 열었는데 도움을 주지 못할 망정 되려 입을 닫으라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정려원씨의 발언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사람들이 눈깔을 똑바로 뜨고 현실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남 얘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다. 우리는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좀 더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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