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페미니즘이 싸우는 상대가 누구인지도 정확하게 적시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남성은 아니다. 바로 우리 안에 내재된 '성차별주의'이다.
대개 사람들은 페미니즘 하면 남자처럼 되고 싶은 한 무리의 성난 여자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페미니즘이 권리에 관한 것이라고, 다시 말해 여자들도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 없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면 그들은 기꺼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이야기를 마칠 즈음 곧장 이런 반응을 보인다. 당신은 남자를 혐오하고 늘 화가 나 있는 '진짜' 페미니스트 같지 않다고, 당신은 다른 것 같다고 말이다. 이에 나는 나야말로 진짜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이며, 페미니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덮어놓고 짐작했던 모습과는 다를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서문 중 일부
저자는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 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벌어졌던 페미니즘 운동이 추구했던 가치와 40여년간의 역사들을 되짚어 간다. 그 과정에서 도출되었던 문제, 실패했던 사례, 내부의 갈등, 외부에서의 공격, 한계 등을 서술한다.
책에 서술된 페미니즘 역사의 한 단편은 현재 한국 모습과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다. 남성에게 성차별주의에 대해 알리는 것에 미진하여 대중매체가 페미니즘을 '반남성운동'이라고 묘사하게 되었다. 한국 내 페미니즘 논쟁 중 거의 대부분이 성차별주의 철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대개 페미니즘을 '남성혐오'로 인식하고 있다.
성차별주의가 낳는 폭력성은 비단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남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흔히 남성들이 역차별이라고 부르는 사례들이 성차별주의에서 비롯된다.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가 남성에게 어떤 특정한 남성성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폭력의 근원인 가부장제 철폐는 모든 남성들도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며 젠더갈등의 해결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해제로 포함된 권김현영님의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는 아주 감동적이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가능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