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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1.26 옥천 포항 여행
국내 유랑기2018. 1. 26. 18:59


엉망이었지만 어영부영 잘 돌아가는 여행도 있다. 친구들과 한 번은 수안보에서 꿩고기 저녁을 먹고 포항을 돌아 여행을 하자며 나왔더랬다.

퇴근하는 친구들을 픽업해 20여년이 된 엘란트라를 몰고 수안보로 달렸다. 분명히 네비게이션에 '수안보'라고 치고, 가장 상위에 있는 곳을 선택해 달렸다. '충북 수안보'라고 확인도 했으니, 수안보로 갈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는데.... 좀 멀리 가는 것이다.

중부고속도로를 타다가 호법에서 영동으로 갈아타야 했는데, 네비게이션이 직진을 가리켰다. 네비가 약간 이상하다는 것은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길이 또 있나보지.... 하며 느긋하게 중부고속도로를 타며 대전 근처까지 갔다.

우리 뭔가 멀리까지 온 것 같다고 이야기 하던 와중에 우리는 경부고속도로까지 와버렸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비게이션이 옥천 IC로 나가라는 지시를 하자 톨게이트로 나가면서 '수안보가 10여킬로미터 남았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럴리 없는데.... 하던 중에 자동차가 고장나 버렸다. 옥천 톨게이트에서 나가자마자 엔진이 꺼져버려 나는 차를 길가에 세웠다.

보험에 연락을 하고 렉카를 기다리고 있던 중, 우리는 왜 옥천까지 왔는지 핸드폰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우리는 수안보보다 훨씬 내려와 충북의 남쪽에 있는 옥천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왜 수안보가 아니라 옥천이지? 친구들과 당황하며 수안보를 검색했다. 네비게이션 1번째의 항목은 '충주시 수안보면'이 아니라 '옥천군 수안보', 즉 관개용수를 둑을 쌓아 보관하는 '보'였다.

왜 네비게이션엔 일개 작은 저수시설을 가리켰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지도에도 검색이 안된다. 보와 같은 저수시설은 국토교통부 관할이 아니라 당연히 검색이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 네비게이션에 있던 거지?

차는 고장났고, 우리는 난생 처음 밟아보는 옥천에 떨어졌다. 대형 사건이었지만, 친구들과 우리는 옥천 면에서 삼겹살을 사 먹고 여관에서 숙박을 했다.


아침에 카센터를 방문하니,... 차의 미션이 나갔다고 한다. 오래된 차종이었지만, 다행히 카센터에 엘란트라 미션이 있어서 싸게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치는데 시간이 소요되므로, 우리는 옥천에서 관광을 해야 했다.

서둘러 핸드폰을 검색하여....


정지용 생가를 찾았다.

정지용이 누구냐면....


나와 친구들이 무척 좋아하는, '향수'라는 시를 쓴 위대한 시인이다.

향수는 가곡으로 김희갑이 작곡하여 박인수와 이동원이 부른 노래로 있다. 친구와 나는 이 노래를 노래방에서 주거니 받거니 몇 차례 부른 적이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돗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내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은 이 옥천읍 하계리 출신으로 휘문고를 거처 일본의 대학에서 졸업했다.

사실 정지용 시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향수>라는 시만 무척 좋아할 뿐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으로 1926년 등단하여 많은 시인후배들을 양성하였고,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던 1942년 이전까지 시를 썼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실종되어 그 이후를 아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놀라웠던 것이.... 근처에 육영수 여사 생가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어머니, 박정희의 아내 되시는 그 분의 생가다.

육영수의 아버지 육종관은 옥천에서 알아주던 갑부였다. 첩도 다섯명이었고, 육영수의 형제가 12남 10녀였다고 한다. 육영수는 육종관과 본처 사이에서 난 적녀로 1남3녀 중 차녀이다.


그냥 한바퀴 돌면서 찾아본 우물만 4개였다. 게다가 집안에 얼음을 보관하는 석빙고까지 있었다. 게다가 연못까지 있다. 이게 한창 때의 모습보다 작은 것이라고.

이런 부잣집에서 살며 교사생활을 하다가 박정희를 만났다고 한다. 아버지 육종관은 박정희와의 결혼을 무척 반대했다고 한다. 이런 갑부집 적녀가 한낮 군인에게 시집가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을 듯 하다. 그러나 육종관이 죽을 때 박정희에게 이런 큰 인물을 알아보지 못해 미안해 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당시에 재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영수 여사는 굉장히 헌신적으로 가정을 돌봤고, 대통령이 된 남편을 중재했다. 얼마나 육영수의 행실이 곧고 고왔는지, 박정희를 욕하는 사람들도 육영수를 욕하는 건 꺼린다. ...

육영수 생가 맞은편의 주차장에는 대구 경북에서 온 관광버스가 많았다. 일종의 성지순례같은 것이랄까. 


도토리전(6000원)

정지용생가와 육영수생가 근처에는 유명한 묵집인 <구읍할매묵집>이 있다. 먹기리X파일에서 '착한식당'으로 선정되었던 집이다. 오직 묵요리만을 판매하는데, 묵사발이나 도토리전같은 것을 판매한다.

꾸덕한 느낌의 도토리전. 도토리가 그렇게 맛있냐? 하면 도토리는 그렇게 맛있는 음식은 아니지 않냐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씁쓸하고 떫은 느낌의 맛이 한국산 도토리의 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떫은 도토리 묵을 최고로 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타닌을 덜 빼서 그렇습니다.


골패묵(8000원) 도토리묵을 썰어서 먹는 도토리묵이다.

먹거리X파일에서는 순수국산 도토리가루로 만든 묵이라며 착한집으로 선정한 것으로 안다.

본래 프랑스같은 유럽 나라에선 도토리를 가려서 먹는다. 도토리나무는 대개 떫은 맛을 내는 도토리를 내는데, 가끔 떫지 않은 도토리를 내는 나무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 나무를 골라서 살려두면 달콤한 도토리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육종으로는 떫지 않은 도토리를 골라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도토리나무를 키워 도토리를 맛보고 다시 육종하기에 시간이 너무 들어가는 것이다.

놀랍게도 떫은 맛으로 먹지 못하는 도토리를 한국에서는 특이한 방법으로 가공해서 먹는다. 도토리의 껍질을 깎아 알맹이를 분쇄해 플루이드 상태를 만든다. 그리고 물을 추가해 녹말을 가라앉힌다. 이 과정에서 떫은 맛을 내는 타닌(탄닌)이 물에 녹는다. 수용성의 타닌이 물에 녹으면 물을 제거한다. 수 차례 반복하면 타닌은 더욱 더 많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남은 도토리의 녹말을 말리면 도토리묵가루가 된다. 우리는 그 도토리가루에 물을 넣어 끓이고 굳혀 '묵'을 만들어 먹는다.

결론이 뭐냐면... 떫은 맛은 국산 도토리묵의 맛이 아니다. 타닌을 덜 제거한 것 뿐이다. 중국산 도토리가루도 떫을 수 있다.


도토리묵사발(7000원)

도토리묵의 요리방식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묵사발은 정말 맛있게 먹는 요리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 김치와 묵을 담아 동치미국물을 부으면 기똥차게 맛있는 요리가 탄생한다. 도토리묵의 쌉싸름한 맛과 짭쪼름하고 시원한 국물의 조합이 정말 좋다.

착한식당이니 뭐니해도 도토리묵은 도토리묵이다. 게다가 우리 어머니는.... 가을만 되면 선산에서 도토리를 주워와 진짜 국산 도토리묵을 해주신다. 그래서 먹어보면... 그냥 중국산이랑 비슷하다.

<구읍할매묵집>은 위치가 좋다. 육영수생가나 정지용생가, 근처의 산을 등산하다가 내려와 허기진 배를 달래기 좋다. 막걸리 한 잔을 곁들여도 좋고.... 아마 이 날 운전을 하게 되지 않았다면 나도 막걸리를 마셨을 것이다.




수리한 차를 끌고 나와 금강휴게소에 왔다.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휴게소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친구의 의견을 받아 잠깐 쉬기로 했다. 휴게소 답게.... 약간 어수선하긴 하지만, 앉아서 구경할 수 있는 자리도 있고, 강변으로 나가볼 수 있는 계단도 있었다.


유원지보다 더 멋있는 휴게소다. (사진 오른쪽 끝에 있는 것이 금강휴게소다)

근처 둑에 가면 낚시하는 사람들고 많고, 민물고기로 요리를 해주는 포장마차도 있었다. 지나가다가 들리면 볼 거리도 많고 좋을 것 같다.

경부고속도로 옥천 근처에 위치해 있다.




원래 목적지인 포항에 왔지만, 이런 저런 사정도 있고, 구경도 하다 보니 늦은 시각에 도착해버렸다. 그리고.. 포항에서 유명하다는 식당들을 돌았지만, 죄다 문을 닫아 못들어갔다. ㅠ

결국은 차차차선지로 택한 것이 죽도시장이었다. ㅠㅠㅠㅠ

시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과메기도 팔고 있었다. 구룡포가 근처이니 과메기가 유명할 수 밖에.... 시식코너에서 하나를 먹어보니 꼬들거리는 것이 너무 적절했다. 그래서 20000원짜리 하나를 샀다.(서울에 가지고 가 먹어보니... 완전히 덜마른 과메기였다. 시식한 것과는 전혀 달라서 엄청나게 실망했다.)


그리고 포항의 또다른 명물인 개복치가... 있었다. 장사중인 녀석은 아니었는데, 처음에는 고래인 줄 알고 그 크기에 깜짝 놀랐다 ㅠㅠㅠ 


죽도시장엔 내가 좋아하는 횟감이 없다. 광어는 비싸고.... 강도다리같은 거만 있고.

그냥저냥 5만원~6만원어치 잡어회 사다가 저녁을 먹었다.


별로 좋은 기억은 없는 죽도시장.



이튿날 찾아간 호미곶.

한반도를 호랑이라고 생각하면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 이곳이기 때문에 호미곶이라고 한다. 원래는 장기곳이었다가 2001년에 명칭을 바꾸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육지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중 하나다.


바위해변에 갈매기 떼들이 많다.

신년이 되면 해돋이를 보러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하여 이 곳의 이름은 해맞이 공원이다.

땅에는 왼손이 있고,


바다에는 오른손이 있다.



해맞이 공원 옆에는 호미곶등대가 있고


그 옆에 국립등대박물관이 있다.


등대에서 사용하는 여러가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등대에서 빛을 비추는 방법, 등대 생활, 항로 표지등을 볼 수 있다.


무종(fog bell): 짙은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종을 때려 소리로 선박에 등대위치를 알려주는 안개신호다.


포항 호미곶을 마지막으로 구경을 하고 서울로 돌아가다 점심을 먹으러 대구 칠성시장의 <단골식당>에 왔다.

원래는 탕수육을 먹으러 왔지만 문이 닫혀 먹을 수가 없었다.


기가 막히게 맛있던 돼지불고기(5000원)

역시 직화로 구운 돼지고기가 맛있는 법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일이 풀리지 않았던 엉망이었던 여행이다. 차는 퍼지고, 이상한 곳으로 가고, 가는 곳마다 문이 닫혔다.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은 음식을 먹고 괜찮은 구경은 한 듯 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름대로의 추억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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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기도하